21년 4월 26일 기록된 내용입니다.요즘은 그야말로 과도기적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제까지 봐왔던 이미지의 재현은 안하고 싶다는 입장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친구들과 편집숍을 운영할 때 연예인이 참여한 일일 클래스 현장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현장 자체의 생생함과 즐거움 보다는 모두가 괜찮은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간은 오로지 이미지에 바치고 있었어요. 사실 그 현장만 그런건 아니고, 저도 늘 촬영할 때 괜찮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현장의 시간을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촬영하고 나면 진이 빠져 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일하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좋은 결과물을 내는데 애를 쓰는게 나쁜거 같진 않은데, 대체 그렇게 남긴 좋은 결과물이란 기준이 뭐고, 어디서 왔지? 라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멋있는 사진이 좋은 결과물인건가?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지가 않은데 결과물이 아름다울 수 있나 싶고, 지금까지 멋지다고 생각했던 이미지들의 기준이 사실 서양 문화에서... 그것도 부르주아 문화에서 파생된 것을 계속 재현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자각이 일었어요. 그게 나쁘다기 보다 아무 비판 의식없이 더 멋있고 세련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문화의 의도는 계급적이라 보다 세련되고, 보다 수준이 높다라는 구분 의식이 있어요. 그 문화에 속하지 않으면 열등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죠. 그런데 그 문화가 궁극적으로 행복한 건지 풍요로운 건지 모르겠어요. 부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각박해 보이는 사람이 많아 보이거든요. 그리고 다시 생각하면 우리 토양의 정서가 분명 있을텐데 그걸 알아볼 기회도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건 아닌가 싶고, 왜 나에게, 우리에게 자신이 없을까 싶더라고요. 오늘 윤여정 선생님의 수상소식을 접하면서, 정이삭 감독님이 이민자 시선을 담은 잔잔한 생활 정서의 영화가 호평 받는 것을 보면... 우리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은 멀리 찾을게 아니라 어쩌면 가장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바로 가까이에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수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처음엔 미리 섭외했던 모델 역할의 친구가 동네를 산책하며 일상 모습 그대로 사진을 찍는 장면들을 담는다는 컨셉이었어요. 실제로 직업이 포토그래퍼이고, 한남동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익숙한 공간과 자연스러움을 담자는 거였죠. 사실 거기까지 밖에 생각을 못한건데, 솔직한 심정으론 마음에 안들었어요. 늘 해왔던 생각이고, 안봐도 어떤 이미지가 생산될지 상상이 되었거든요. 그 조바심을 안고 다시 헤이더비 컨셉을 상기했어요. 더비슈즈는 군대, 직장, 학교 등의 단체 이미지를 가진 신발인데, 그동안 봐왔던 사회 조직들은 경직되고 일방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유연하고 편안한 사회 생활의 이미지였으면 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유연한 단체의 이미지를 표현했으면 했고... 친구들에게 러프하게 던졌죠. 어깨동무를 하자고! ㅋㅋ 어른이 되어서 언제 스킨십을 하겠냐, 안그래도 어색한 사이인데 얼마나 서먹한 표정이 나오겠냐, 그 자체가 실제 아니겠냐고. ㅋㅋ 친구들은 동의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저항감이 생기는 듯 했어요. 사진 찍는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고까지 했죠. ㅋㅋ ㅋㅋ 촬영 스케치 멤버들에게 미리부터 신고 있던 헤이더비에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오도록 했죠. 모델 친구에게도 절대 예쁘게 꾸미고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요. (생각해보면 왜 브랜드 사진은 다 새거여야 하는지 모를일이었거든요.) 저는 어땠겠습니까, 다들 반신반의하고 저도 결과물이 어떨지 모르는데... 여하튼 촬영 당일 아침까지도 부담이 천근만근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정된 사진을 찍어두고. ㅎ 미리 답사로 봐뒀던 한남동 육교에서 활짝 컨셉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프흐흐. 처음엔 남산도 보이고 활짝 열린 서울 하늘의 배경이여서 이 장소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찍고 난 사진을 보니 런던, 파리, 뉴욕에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는 번화가의 빌딩 도시가 아니어서 좋더라고요. “서울” 답다고 할까요. 저희도 약간 1900년도 후반인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사진을 찍는 과정에선 평소에 사진 앞에 서지 않는 친구들은 자기가 얼마나 경직되어있는지, 외모 컴플렉스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마음은 활짝 펼쳐내려고 하는데 몸이 펼쳐지지 않기도 하고, 결과물을 보니 평소에 보지 못하던(보고 싶지 않은) 표정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던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원했던 엄한 것에 힘주고 긴장하지 않은 편안한 표정의 우리들의 사진도 나왔습니다. 사실 처음 시도해보는 작업이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걱정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의 반응이 의외로 좋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어쩌면 다들 저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어떤 시행착오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도 과정 그대로 공유하려고요. 같이 힘내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