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가방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뒷짐지고 시골길을 걷는 할머니나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 가방을 지니고 있다.어머니의 화장품을 바르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처럼 처음 가방을 가졌을 때에도 그랬다. 으쓱하니 무언가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가방 무게가 나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 같기도 했다. 신학기가 될 때마다 새 노트를 마련하고, 교과서에 아세테이트지를 씌우고, (세상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 필통에 마음에 드는 필기구를 채워 가방을 꾸리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몇 달이 지나면 새로운 마음가짐은 지나가고 가방은 무질서한 공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늘 가방을 열었을 때 가지런한 공간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었다. 기대했던 사회인의 모습은 정리 정돈을 잘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미니멀리스트의 꿈은 성인이 되어도 떨쳐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무질서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정리정돈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일을 하기 위한 기본 물건들 (핸드폰, 일정 수첩, 펜, 보조배터리, 충전기, 안경, 지갑)을 제외하고도 책, 텀블러, 갑자기 장을 보기 위한 천주머니 등을 챙겨야 하는 것이 일상임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작고 단정한 가방은 내 라이프스타일과 좀처럼 맞지 않는 것이었다.이런 맥락과 비슷한 사람, 가방 스타일이 인상적으로 깊게 남아있는 사람이 제인 버킨이다. 스티커를 더덕더덕 붙이고, 장식을 달고, 원하는 만큼 물건을 담고, 바닥에 턱 내려놓거나, 안아 올리거나 하는 모습들이 내게는 그렇게 쿨해 보일 수 없었다. 정리가 뭐가 중요하니? 라는 듯한 당당한 모습들. 애정을 가지고 코스튬 하면서 오래도록 사용하지만,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지 않는 것과 연예인이라면 가방을 패션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몇 년 동안 같은 가방을 사용하고 생활감이 느껴지는 것도 쿨해 보이는 이유였다. 하지만 무질서한 공간 속에서 교통 카드, 핸드폰을 찾으려고 뒤적거릴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는 것은 나의 현실이었다.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오래도록, 부담 없이, 급하게 물건을 찾느라 뒤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가방이 필요했다. 2. 처음엔 클로킷과 같은 얇은 원단으로 만들었다. 입구를 복주머니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조였을 때 모양이 열매 같고 귀여웠다. 사용해 본 결과 핸드폰과 카드 지갑을 바로 꺼낼 수 있는 포켓, 잎사귀처럼 가벼운 무게는 합격이었다. 어느덧 가방을 내려 보지 않고도 손만 움직여 핸드폰을 꺼낼 수도 있게 되었는데, 이 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입구 부분을 조였다가 푸는 것이 불편한 부분을 해결하는 것과 여러 소재로 샘플을 만들고 사용해보고 하느라 겨울이 가까워졌다. 주변의 조언대로 두꺼운 소재로 샘플을 만들어서 사용해보기 시작했다. 사용해보면서 가방의 적당한 사이즈, 포켓의 사이즈를 잡았다. 그리고 대중교통 이용 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타지 못하게 되면서 텀블러와 테이크아웃 잔을 잠시라도 수납할 수 있는 포켓이 절실해졌다. 당시 주변에도 텀블러 포켓이 필요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버스를 타면 친구의 텀블러도 맡아 담아 주기도 했다. 이름을 정하지 않아서 만능 가방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3. 의외로 시간을 많이 할애했던 것은 소재를 찾는 일이었다. 캔버스가 뭐 특별할 게 있냐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생지여도 업체마다 조직과 컬러가 달랐다. 특히 자연스러움과 구매 후 세탁 시에 수축되는 현상을 줄이려고 워싱으로 마감을 했는데, 작업 후엔 종이 구겨놓은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단 찾아 샘플 해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수축률이 적고, 조직감도 촘촘하고 톡톡한 캔버스를 발견했는데 이 원단은 워싱을 해도 많이 구겨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원단을 짤 때 최종 면적을 늘리기 위해 좌우로 당겨서 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원단의 짜임이 촘촘하지도 않고, 늘려진 만큼 세탁하면 확 줄어들게 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른 원단은 일부러 늘리지 않고 자연 축을 잡아서 제작한다고 하셨다. 원단 면적이 작은 반면에 짜임은 야무졌다. 이 역시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캔버스의 아날로그 한 느낌도 있고 세탁하고 길들이면서 사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이 원단으로 결정했다. 시중에 포켓 백은 많이 있지만 너무 각이 지거나 소재가 무거웠다. 각진 가방은 아무래도 빌딩 건축물 같은 느낌이 들어 딱딱해 보이고 가끔은 모서리가 몸을 쿡쿡 찌르기도 해서 불편하다. 천가방으로써 몸에 감기면서 자연스럽게 쳐지는 느낌은 살리고 싶었다. 실용성과 더불어 포기할 수 없었던 가방의 분위기였다. “가벼움” 또한 하고 싶은 것도, 다닐 곳도 많은 무이 손님들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둥둥 머릿속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가방을 꺼내어 바리백을 만들었다! 글 : 정순아(meimui@naver.com) 사진 : 누구삶(nugusalm@gmail.com). @mui_dairy